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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Criticism/Society

횡단보도 짧은 초록불 노인 보행약자 속도 고려 안 해 발생한 교통사고

by Editor hyehye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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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노인이 된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몰랐던 사실, 슬픈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스토리를 쓰기 위해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어보게 되었다. 20대의 나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사진: Unsplash 의 Janosch Lino

 

초록불이 켜졌다. 횡단보도에 들어가기 전, 왼쪽에 서 있던 할머니를 봤다. 그는 아직 신호가 바뀐 걸 모르고 있었다. 2초 정도 더 지났다.

할머니의 지팡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좀 전에 걸어왔던 속도보다 더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오른손에 쥔 지팡이와 왼발이 함께 움직이고, 지탱한 힘으로 오른발이 부지런히 나아갔다.

할머니 속도에 맞춰 걸었다. 평소 내 걸음보다 느려졌음이 느껴졌다. 곁눈질을 하며 발을 맞췄다. 횡단보도 절반도 못 건넜는데, 초록색 숫자가 뜨기 시작했다. 22초, 21초, 20초, 19초, 18초….

맘이 급해져왔다. 나도 모르게 다시 발이 빨라지려 했다. 애써 자제했다. 초록 막대는 할머니를 고려하지 않고 계속 떨어졌다. 이윽고 2~3개만 남았다. 갈 길이 아직 남았다.

결국 '빨간불'로 바뀌었고, 할머니와 난 여전히 횡단보도 위에 있었다. 오른편에 서 있던 차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차를 바라보며, 할머니 걸음 속도에 맞추며, 인도에 가까스로 올라섰다.

깨달았다. 빨간불에 횡단보도에 갇힌 불안함이 이렇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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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봐야 겠단 생각을 했다. 계기가 있었다.

동네서 운전하며 가다 횡단보도에 멈췄을 때였다. 초록불이 켜진 시간만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쏜살 같이 건너가는 와중에, 가장 많이 뒤쳐진 채 가는 이가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백발 할머니였다. 검정 비닐 보따리를 들고, 허리가 굽은 모습의. 속도가 걷는 이들 중 가장 느렸다. 아내에게 "저러다 못 건너실 것 같아" 라고 걱정했다. 그럴 것 같다며 우려스런 맘으로 함께 지켜보았다. 여차하면 나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허용된 시간은 빠르게 끝났다. 차 안에 있을 땐 지루했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너무 짧은 거였다. 할머니는 여전히 횡단보도에 있었다. 그것도 겨우 절반 지점에.

땅만 보며 열심히 걷던 사람. 경적을 다행히 참은 차들이 몰려와도 어쩔 수 없던 사람. 고작 길을 건너는 사소한 일상에 매번 위험이 따랐을 사람. 그러니 내 본분대로 기록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래 쓴 몸이 말을 안 들어, 느릿느릿 걸을 수밖에 없던 이를 위하여. 실은 세월에 이내 그렇게 될 나를 위하여.

횡단보도 길이에 비해, 녹색불이 짧은 곳을 제보해달라고 했다.
서울 용산·송파·동대문·영등포·종로 5개구에 있는 곳을 돌며, 실제 어떤지 직접 건너봤다.

 

차에 있는 동안에는 사람이 건너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신호등이 지루하다 생각했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권으로 놀러갈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건너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신호등이 길다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더 많은, 나이든 사람들이 건널 것을 생각하면 그 신호도 그리 길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몇 초 남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뛰어가면 그만이었다. 잠시 뛰었다 숨을 고르고 다시 또 바로 걸어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은 물론, 다리를 다쳐 걷는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 또 노인이 아니더라도, 50대 이상이 된 우리 엄마와 아빠도 뛰는 것을 힘들어 한다. 걸음이 느린 아이들 역시 위험할 것이다. 결국 짧은 신호등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10대 후반-40대 초반 사이만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일까?

빨간불 신호등이 되었을 때 횡단보도에 갇혀본 적이 없다. 설령 갇혔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초록불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 건너기 시작해, 빨간 불이 되어 빠르게 달렸던 때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가능하지만, 미래의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Unsplash 의 Miikka Luotio

 

서울 용산구에 있는 횡단보도에 갔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백발 할아버지를 봤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81세라 했다. "제가 어르신과 나란히 건너도 되느냐"고 했더니 그는 "그러라"며 (이상한 사람 보듯이) 웃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대화하는 사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발을 맞춰서 같은 속도로 걸었다. 아까보다 걸음이 분주해진 게 느껴졌다.

제한 시간은 40초 정도였다. 횡단보도 거리가 생각보다 길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신호등 초록 막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31초, 30초, 29초, 28초. 머릿속으로 재어보니, 시간 안에 건너지 못할듯 했다. 맘이 바빠지고 불안해졌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할아버지를 몇 번 앞서가려 하자, 그는 "그냥 빨리 건너라"고 했다. 그 말 덕분에 애써 자제할 수 있었다. 역시 '빨간불'로 바뀐 뒤에야 들어왔다.

 

누군가 그랬다. 노인은 나이든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고되고 복잡한 세상에서. 그리 70년, 80년, 90년 넘게 살아 남은 노인들이 쓰러지고 있다. 다름 아닌 '횡단보도' 위에서.

지난해 4월 16일이었다. 저녁 8시37분, 제주 구좌읍 횡단보도에 83세 할머니가 섰다. 녹색불에 들어갔으나, 다 건너기 전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할머니를 보지 못한 차량이 그대로 받았다. 어르신은 심정지 상태로 제주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기서 생을 다했다.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들 중에서 어르신 비율이 57.5%다(행정안전부, 2020년 기준). 무려 절반이 넘는 거다. 게다가 최근 5년간 매년 꾸준히 비율이 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녹색 신호가 짧은'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더 많았다. 1초에 1미터 가야하는(신호가 짧은) 곳에선 교통사고가 0.53건으로, 그보다 신호가 긴 곳(0.41건)보다 사고가 1.3배 더 많았다(국토교통부, 2022년). 그런데 국내 어르신 중 하위 25%의 보행 속도는 할아버지가 1초에 0.663미터, 할머니가 0.545미터로 1미터에 한참 모자란다.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고. 그중 절반 이상이 어르신이고, 매년 꾸준히 비율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고 중 녹색 신호가 짧은 횡단보도에서 그 비율이 더 많다는 것이다. 신호가 짧은 곳은 1초에 1m를 가야한다고 한다. 1초에 1m? 평소 걸음 속도가 느린 편인 나도 이렇게 건널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못 미칠 터. 건너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신호등 시간을 만든 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만든 것일까.

 

사진: Unsplash 의 Noah Dominic

 

노인보호구역 등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기선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주어지는 시간이 0.7m당 1초로, 일반 횡단보도보다 더 길다. 하지만 노인보호구역 갯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어린이보호구역의 10% 수준이다. 예산도 70억원(2021년 기준)으로, 어린이보호구역(1988억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밖에도 실질적 대안이 많다.

홍성민 한국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은 "어르신이 긴 횡단보도를 한 번에 건너려면 힘드니, 끊어서 건너도록 '교통섬'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또 "도로에서 횡단보도 있는 부분만 좁히거나, 과속방지턱처럼 튀어나오게 만들어 차량 속도를 줄이는 아이디어도 있다"고 했다.

또 홍 책임연구원은 "보행자가 다 건너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녹색불을 연장해주는 '스마트횡단보도'가 있다"고 했다.
울산시는 실제 지난해 '스마트횡단보도'를 시청 앞에 시범 설치했다. 어르신 등 보행 약자가 다 건너지 못할 경우, 최대 6초까지 자동으로 연장해주는 방식이다. 시내 한 개 지점에 만들었는데, 예산 1억원 정도가 들었다.

반응이 어땠을까. 이상희 울산시청 교통기획과 주무관은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이용하신 분들이 만족한다고 했다"
며 "연세가 있는 분들 입장에선 녹색불을 잡아주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 횡단보도에 대해 알게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알고보니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닥에는 불빛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소리로 알려준다. 신호등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는 다음 신호에 건너라고 이야기하고, 빨간 불일 때 횡단보도에 가까이 가면, 초록불일 때 건너라고 알려준다. 하지만 자동으로 녹색불을 연장해주는 횡단보도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신호등이 연장되어야할 만큼 횡단보도에 오래 있지 않아 몰랐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이에 대해 무신경하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가 다 노인이 될 것이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또 미래에 어떤 일이 생겨, 내 신체가 불편을 느껴, 보행 약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약자를 위한 일에 앞장서서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출처 :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4142337578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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