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임씬 리턴즈를 열심히 보다가 4번째 에피소드인 교주 살인사건의 모티브인 '백백교'와 '서울 대학로 백골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음 에피소드인 풍무회장 살인사건과도 이어질 듯 싶어, 서울 대학로 백골 사건에 대해 작성해보기로 했다.
사건의 개요
2008년 11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의 공사현장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백골 10여 구가 한꺼번에 발견된 사건.
- 2008년 11월 2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의 한국국제협력단 본관 철거현장에서 굴삭기를 동원해 작업하던 중 건물 지하의 흙구덩이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백골 수십 개가 한데 뒤섞인 광경을 인부들이 목격. 인부들과 굴삭기 운전자는 작업을 중단하고 경찰에 신고, 경찰이 출동해 수사에 착수.
바로 앞 사건인 법원 살인사건에서 장아들이 죽은 곳, 공사현장에서 백골이 발견된 것과 같다.
- 가설 1 : 강력사건 피해자?
제일 먼저 의심된 것은 토막 살인이나 시체 유기.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15구 가량은 이에 연관된 것은 아니라 판단되었고 사건은 단순 변사사건으로 검찰에 송치.
- 가설 2 : 6.25 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시신이 발견된 종로구 일대와 인근에 위치한 성북구 돈암동의 미아리고개는 6.25 전쟁 당시 서울로 침투하던 북한군의 남침 경로였기 때문에 서울을 함락하려는 북한군과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대한민국 국군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고 인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북한군이 국군 부상자와 반공성향의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전적이 있음.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도 이 점에 주목하고 현장으로 급파되어 현장조사 및 신원파악에 착수.
그러나 현장을 조사하던 군은 조사에 착수한 지 14일 만에 국군 전사자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적에게 사망한 국군 전사자의 유해라면 화기의 탄피라던가 계급장, 전투복의 단추, 군장의 부속품 등 관련 유품이 발견되기 마련인데 백골과 주변 현장에서는 그런 유품들이 전혀 나오지 않았으며, 시신에서는 직접적인 사인이 될 총상이나 외상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음.
대부분 청장년층 남성이 대부분인 국군 전사자의 유해와 달리 대학로에서 발견된 백골들은 어린이와 여성들의 유골이 뒤섞여 통상적으로 발굴되는 국군 전사자 유해와 맞지 않았다.
- 가설 3 : 인민군이 저지른 인민재판이나 학살?
경찰은 이 가설에 주목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함께 조사를 시작. 그러나 국방부에서 내린 결론과 마찬가지로 민간인임을 알 수 있는 유품이 나오지 않았으며 학살 현장에서는 집단처형 직후 바로 가매장하기 때문에 인체의 형태가 잘 보존되는 반면 대학로의 변사체는 유골이 한데 뒤섞였을 뿐만 아니라 부분별로 절단된 흔적이 있어 정확한 신원조차 알 수 없었음. 학살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는 두개골의 총상이나 유해에 가해진 외상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사정리위원회도 민간인 희생자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중단.
- 가설 4 : 사건 현장 인근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해부실습을 하고 버린 시신?
국방부와 과거사위가 제시한 의견. 그러나 경찰이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남아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실습일지를 모두 분석한 결과 실습에 쓰인 시신은 모두 자체적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했다고 기록하여 해부실습 후 유기한 시신도 아니라는 결론.
- 가설 5 : 일본 제국에 의해 벌어진 생체실험의 희생자 또는 경성제국대학의 의학전문학교에서 실습 후 버려진 시신이나 인체 표본?
경찰은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사를 계속했으나 조선에서 조선인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한 기록은 없으며 외부 요인에 의해 유골이 훼손되거나 병원체에 감염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경찰 조사를 받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자들도 어린이의 시신을 해부한 적이 없고 실험 후에는 해방 후 한국과 마찬가지로 장례식을 치르고 서대문구 홍제동의 화장장에서 화장을 했다고 진술하면서 경찰의 수사는 다시 뒤집혔음.
내사 종결
국과수는 검시한 두개골 중의 일부가 의료용 톱에 의해 절단된 흔적이 있었으며 변사체가 유기된 현장이 과거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강의실과 대학병원 사이 공터였다는 점을 근거로 2009년 3월 26일 대학로의 백골들은 구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해부실습을 하고 유기한 시신이라고 1차 결론을 내렸음. 그러나 국과수 수사 결과를 뒤집는 결론이 나왔는데, 대학로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경찰이 추산한 15명이 아니라 최소 28명으로 추정되었으며 대학로 공사현장도 이들의 사망현장이 아니라는 것.
- 변사자의 사망시점은 50년 내지 100년 전후.
- 유골과 함께 동물 뼈 일부가 섞여 있었음.
- 각 변사자간 혈연관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유골의 외상 등 타살의 흔적이나 병변 등은 역시 발견되지 않았음.
- 절단면이 있는 유골의 절단 도구는 톱으로 추정.
- 총 남성 11명, 여성 11명, 불명 6명.
경찰은 시신이 경성제대 의학부에 의해 유기되었다는 국과수의 발표에 따라 사건을 내사종결하고 시신을 관할 구청에 인계. 구청은 이를 무연고자로 분류해 행정처분하였음.
이후 2009년 SBS 뉴스추적에서는 일본 제국의 우생학적 연구자료로 수집된 유골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음. 일제가 일본인과 조선인의 민족적 차이를 측정하고 일본 민족의 우월성과 조선민족을 식민통치해야 하는 당위성을 구하기 위한 연구 표본으로 수집.
2021년 5월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서도 해당 내용을 다루고, 그리고 가장 최근 '크라임씬 리턴즈'에서도 다룬 것.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서는 '731부대'와 연관하여 내용을 다루었다면 크라임씬에서는 풍무그룹(실제X)과 내용을 연결하기 위해 선선교라는 사이비 종교와 연결시켰던 것!
731부대가 조금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고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 사이비종교가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가짜 은행이라니, 정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생각뿐이다.
출처 : 나무위키 <서울 대학로 백골 사건>